투자

포모로 들어와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

이건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공개 보도와 장중 숫자를 보며 혼자 적어 둔 오피니언이에요. 고점·저점·시총 증발 규모는 보도 시점 기준이라 장중에 바뀔 수 있습니다. 월세·생활비로 “저점 줍기”는 하지 마세요.

손등에 적힌 문장

예전에 나는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손등에 적어 두고는 했다.
부끄러워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실행을 당겨 주기도 했다.

근데 주식 앱에는 손등이 없다.
대신 단톡방이 있다.
단톡방에는 이런 문장이 적힌다.

“지금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

솔직히 그 문장을 처음 본 날, 나는 야근 끝나고 편의점 커피를 사면서도 앱을 세 번 열었다.
열 때마다 지수는 위로 가고 있었고, 내 월급은 아래로 고정돼 있었다.
그 간극이 포모다.
포모는 정보가 아니라 타이밍 공포다.

포모가 장을 삼킨 계절

2026년 상반기, 코스피는 말 그대로 사람을 불러 모았다.
장중 고점이 9,000선을 넘나들고, “만피” 이야기가 진지하게 돌았다.
삼전·하이닉스가 지수를 끌어올리면, 사무실 화장실 줄이 길어졌다.
다들 폰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때의 대사는 거의 통일돼 있었다.

  • 나만 안 샀다
  • 옆자리도 샀다
  • 이번엔 다르다
  • 나중에 사면 더 비싸다

사실 이건 투자 문장이라기보다 군중 문장이다.
군중 문장은 설득력이 세다.
왜냐하면 논리 대신 소외감을 쓰기 때문이다.
소외감은 월급쟁이에게 특히 잘 먹힌다.
이미 월세·카드값·야근에 소외당한 사람에게, “시장에서도 소외된다”는 말은 이중 청구서다.

나는 그때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진짜 늦으면 안 된다.”

늦으면 안 된다는 말은, 보통 이미 늦은 사람이 제일 많이 쓴다.

그리고 가격이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다

6월 하순부터 공기가 바뀌었다.
반도체 피크아웃 우려, AI 투자 둔화론, 지정학, 외국인 매도, 레버리지 청산.
뉴스 제목은 날마다 달랐는데, 잔고 방향은 비슷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점(장중 약 9,385) 대비 한 달여 만에 40% 가까이 밀리며 5,600선까지 내려앉은 장면도 나왔다.
시총이 2,700조 넘게 증발했다는 숫자까지.
숫자는 뉴스에 나오고, 체감은 통장에 나온다.

사무실 온도도 바뀌었다.

시기 단톡방 자막
상승 포모. 나만 못 샀다
급락 초반 아직 조정이다. 물타기?
연이은 하락 조모. 안 사서 다행
물린 사람 ……앱을 못 열겠다

포모가 조모로 바뀌는 속도가, 지수 하락보다 더 빠르다.
웃긴 건 둘 다 같은 감정이라는 점이다.
하나는 “놓칠까 봐”, 하나는 “피해서 다행”.
기준은 실력이다. 기분이다.

내가 본 블랙코미디

개인 경험 한 줄.
고점 근처에서 “조금만” 산 뒤, 첫 하락 날 나는 회의실에서 엑셀을 켰다.
엑셀은 거짓말을 안 한다.
다만 사람은 엑셀을 닫는다.

둘째 날엔 “역사적으로 보면”이라는 말을 검색했다.
셋째 날엔 “저점이다”라는 유튜브 썸네일을 세 개 봤다.
넷째 날엔 월세 이체일을 캘린더에서 확인했다.
우선순위가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주변 반응은 더 재밌었다.

옆자리 대리는 “오히려 기회”라며 눈을 반짝였다.
앞자리 차장은 조용히 창을 닫았다.
부장님은 예금 이율을 검색했다.
셋 다 점심시간엔 같은 화장실에서 같은 앱을 열었다.
태도는 달라도 습관은 같다.

사실 하락장에서 제일 무서운 건 지수가 아니다.
내가 지금 누구의 대사를 흉내 내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른다는 점이다.

왜 포모 진입은 자주 아픈가

기계처럼 “FOMO 해서 물렸다”고만 쓰면 재미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다.
그래도 반복되는 패턴은 있다.

  1. 가격이 아니라 소외감을 산다
  2. 소외감을 해소하려고 이미 오른 가격에 손을 댄다
  3. 조정이 오면 “잠깐”이라고 이름 붙인다
  4. 잠깐이 길어지면 이름이 “존버”로 바뀐다
  5. 존버가 끝나면 이름이 “교훈”이 된다

교훈은 무료다.
잔고 감소는 유료다.

레버리지까지 끼면 코미디가 잔인해진다.
올라갈 때 배율이 영웅을 만들고, 내려갈 때 같은 배율이 청소부를 만든다.
영웅과 청소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이 장의 핵심 개그 포인트다.

관련해서 예전에 적어 둔 메모들도 결국 같은 얘기다.
서킷브레이커가 알람이 된 나라,
하루 만에 천국이 된 반등,
레버리지에 물린 날.
장면만 바뀌고 감정은 재활용된다.

의지 탓만 하기엔, 환경이 너무 세다

여기서 조금 신박사스럽게 말하자면—
포모는 개인의 의지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경설정의 문제다.

손 닿는 곳에 단톡방이 있고,
눈앞에 빨간 차트 썸네일이 있고,
귀에는 “지금 안 사면”이 울린다.
그 환경에서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건,
편의점 앞에서 “나는 야식을 안 먹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언은 쉽고, 환경은 24시간 영업한다.

그래서 내가 요즘 쓰는 환경설정은 거창하지 않다.

  • 월급·월세·생활비 계좌와 투자 가능 금액을 먼저 분리한다 → 통장 나누기
  • “지금 안 사면” 문장이 뜨면, 24시간 후에 다시 본다
  • 산다면 비중을 미리 적어 둔다. 감정은 비중을 모른다
  • 레버리지는 “재미”가 아니라 “청산 속도”로 다시 정의한다

의지보다 환경이 세다.
환경보다 월세가 더 세다.
월세는 서킷브레이커가 없다.

조모도 만능이 아니다

하락장에서 “안 사서 다행”은 달콤하다.
근데 그 달콤함도 중독이다.
현금만 만지작거리며 모든 반등을 “함정”으로 번역하면,
결국 포모의 반대편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포모: 늦게 들어간다.
조모: 영원히 안 들어간다.
둘 다 타이밍 신앙이다.
타이밍 신앙의 사제는 유튜브고, 헌금은 수수료와 기회비용이다.

나는 바닥을 모른다.
천장을 알았으면 이 글을 안 쓴다.
아는 건 하나다.
내 통장에서 생활비가 먼저라는 것.

정리하면

포모로 들어와서 가격이 계속 내려가는 사태는,
시장이 잔인한 게 아니라 군중이 예측 가능한 쪽에 가깝다.
사람은 소외를 싫어하고, 소외를 피하려다 가격을 사고,
가격이 내려가면 소외 대신 자책을 산다.

그래도 웃어야 한다.
안 웃으면 야근과 월세와 파란 화면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
블랙코미디는 취향이 아니라, 월세러의 생존 장비다.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당신 손등에 적힌 문장은 무엇인가.

“지금 안 사면”인가.
아니면 “이번 달 월세”인가.

나는 오늘, 후자를 다시 적었다.
전자는 단톡방이 대신 적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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